상상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무기이자, 가장 날카로운, 자신을 베는 칼날일 것이다. 아마도 - 그러한 가장 끔찍한 생각이 든 날은 아마 어느 추운 한 겨울날이었을 것이다. 아니, 정말 그만큼 지독히도 추운 날이었다. 아마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몇 달 동안 떠나보내야 했던 그런 심란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그 만남의 후에 나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하나씩 나의 오른쪽을 지나가는 청주의 야경들이 무엇일까, 나에게는 매우 쓸쓸해 보였다. 잎이 떨어진 채 사람들 곁을 가만히 서있기만 하는 나무와,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는 사람들과, 반짝이는 내부를 보여준 채 꼭 닫혀있는 가게들의 유리문들과……. 나도 모르게 점점 풍경을 따라 뒤로 돌아가는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며, 나는 계속해서 지나가는 그 경치를 감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시계탑 근처의 오르막길, 나는 항상 여길 지나갈 때 마다 이곳엔 왜 이렇게 애견샵이 많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곤 했다. 특히 애견샵 창가에 보이는 새끼강아지들을 보며 귀여워서 어쩔 수 없어하는 모습을 겨우 숨기기도 하였다. 물론 그날 낮 까지는.
하지만 이날은 무엇인가 달랐다. 어쩌면 계속해서 지나가는 청주의 쓸쓸한 겨울 야경을 보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친구를 떠나보낸 그 심란함이 나에게 무엇인가 작용을 하였기 때문일까, 그 강아지들은 더 이상 귀엽게 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상품처럼 전시되어 있는 그 모습은 저것이 과연 강아지인가 물건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했다. 상품이라……. 그렇다면 내가 여행을 가거나 모바일 게임을 할 때 마음에 드는 기념품이나 아이템이 있으면 상점에 들러서 충동적으로 물건을 사는 것과 길 가다 애견샵에서 보이는 강아지를 보고 맘에 들어서 충동적으로 분양 받고 오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것일까. 그렇다면 저것이 강아지라고 더 이상 부를 수 있는 것인가? 그럼 지금 내 앞에서 버스 카드를 찍고 있는 저 사람들과 그 귀여운 강아지들과 마트에 진열되어있는 상품들은 무슨 차이인가? 끔찍한 두통이 내 머리를 서서히 적셔왔다. 그 고통의 흐름은 혈관을 타고 점점 뒤통수로, 그리고 뒷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조용히 눈을 감아 보았다. 나는 아무래도 내가 오늘따라 이상한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조금 더 오랫동안 눈을 감아 보았다. 머릿속에는 두통 속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그 ‘전시된’ 강아지들이 떠다녔다. 이제 조금 더 눈을 꽉 감아 본다. 뭐랄까, 마치 머리가 어지러운 ? 내가 어떻게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젠 아예 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무엇인가를 없애기 위하여…….
집에 돌아왔지만 여전히 정신은 다른 곳에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여전히 그 강아지 생각으로 머리는 꽉 차있다. 나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해 보려고 시도한다. 예를 들어……. 그래, 강아지와 즐겁게 놀아주는 생각을 해 보자. 그래 처음에 강아지를 데리고 오면, 그런데 내 집은 원룸일 텐데, 강아지가 마구 짖으면 어떡하지, 내가 강아지를 키울 수 있을까, 힘들 땐? 머릿속이 너무나 복잡하다. 이불속에 들어가 한 바퀴 뒹굴어본다. 항상 머릿속이 복잡할 땐 이불속에서 뒹굴어보면 마치 생각들이 내면 저 너머로 녹아들어가 사라지는 것 같아서 자주 그랬었다. 하지만 어째서 오늘은 생각이 정리되지 않는 것인가? 여전히 생각은 강아지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하다. 그때 주방이 눈에 띄자 한 단어가 떠오른다. 칼! 아아! 이 무슨……. 끔찍한 혐오감이 올라온다. 이제 다시 눈을 감는다. 조금 더, 조금 더, 아무것도 보이지 않도록. 더 이상의 생각이- 아무것도 머릿속에 남지 않도록. 이불로 내 눈을 가리고, 베게에 머리를 깊숙이 처박고.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더 이상 생각을 하다간 정말 어떻게 될 것만 같다.
며칠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다시 그 친구를 떠나보내었던 성안길에 돌아왔다. 여느 때나 다름없는 성안길의 모습. 예전의 그 고기뷔페도 가보고, 코인 노래방과, 그 친구가 싫어했던 카레 전문점과, 또……. 평소에 보고 싶었던 책 한권을 사고 다시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511번, 나는 버스가 오자 그것을 타고 그날과 똑같은 루트의 길을 따라간다. 물론 그날과는 다르게 어두운 밤하늘이 아니라 타는 듯한 겨울 노을 아래에서. 마치 추운 겨울을 데워주는 벽난로처럼, 그리고 핏빛! 아, 여전히...! 고개를 흔들어 본다. 무엇인가 잘못 본 것처럼. 그래, 저것은 아무리 봐도 벽난로처럼 따뜻한 색의 주황색이 아닌가. 나는 무언가 두려운 듯 몸이 가늘게 떨려온다. 그 오르막길이 서서히 다가온다.
나는 충동적으로 하차벨을 눌러 근처의 정거장에서 내린다. 버스에서 내리자 차가운 겨울바람이 몸 곳곳을 찔러댄다. 마치 내가 버스에서 쫓겨난 것만 같다. 사실 아무도 나에겐 신경을 쓰지는 않았지만, 바람은 마치 나를 질책하듯 자꾸만 내 뺨을 후려갈긴다. 나는 목도리를 조금 더 얼굴로 올린 채 바람에 맞서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기 시작한다. 저 앞으로 서서히 오르막길이 내 걸음에 맞추어 다가오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것만 같은 오르막길 위로 태양빛으로 붉게 물든 노을이 마치 나를 심판하려는 듯이 내려 보고 있다. 버스에서보다 몸이 더 떨려 와서 이제는 정말 추워서 떨리는 건지 무서워서 떨리는 건지 모를 정도로. 이럴 것이었으면 차라리 올 때처럼 버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던가. 하지만 이미 때는 늦고 말았다. 뒤로 돌고 싶어도 발걸음은 나를 자꾸 앞으로 내몰고 있었다. 마치 내가 빨간 구두에 나오는 카렌인 것처럼- 그럼 정말 내가 발목이라도 잘라야 하는 것일까? 기어코 나의 그 빨간 구두는 나를 오르막길까지 몰고 왔다. 두려움에 소름이 허리에서부터 등골을 타고 서서히 목까지 올라온다. 이 길을 정말로 올라가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든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중 또 다른 의문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도대체 어째서 내가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가? 나는 아직 어쩌다 생각만 했을 뿐이고 그것조차도 피곤과 예민함 때문에 나온 발상인데 내가 어째서 죄책감을 느껴야 하는가? 나는 애써 태연한 척 해보려 한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내 몸은 여전히, 아니, 아까보다 더 심하게 떨리고 있다.
그래, 어쩌면 이것은 단지 귀여운 강아지일 뿐이다. 강아지 옆을 지나가는데 불안해하고 떨린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이 아닌가? 눈을 다시 한 번 감는다. 한 번 더. 마치 불안한 예감이 들어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던 평소처럼 나 자신까지 속일 기세로, 나는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아야 한다. 깊게 숨을 들이쉬어 본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주변이 고요해진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본다. 나의 앞에는 지금 그 오르막길이 이어져있다. 하지만 마침 해가 졌기 때문일까, 마치 심판하듯 나를 내리 째려보던 붉은 태양이 사라져 마치 자유인이 된 듯 한 기분이 느껴진다. 여전히 마음은 불안하지만 몸은 이상하리만큼 태연하고 가벼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마치 나를 옥죄고 있던 1톤의 빨간 구두가 벗겨진 듯하다. 진작 이렇게 내어버렸으면 얼마나 좋았던가. 내 오른쪽으로 많은 강아지들이 있다. 드디어 귀여움이 느껴진다! 강아지를 보고서 다시 귀여움을 느낄 수 있는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제 이전의 생각은 깊은 내면 속으로 빠져 사라진 듯하다. 창 안을 바라본다. 시추, 말티즈, 푸들……. 정말 좋아하는 품종의 강아지들이 가득하다. 마침 그 생각도 이제 사라졌겠다, 나는 천천히 걸어가며 강아지들을 구경하기로 한다. 이젠 아무런 생각의 방해도 느끼지 않는다. 그래, 정말로 사라진 것이다. 사라져야만 한다. 나는 이 강아지들에게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계속해서 창 너머의 강아지들을 본다. 계속해서 걸어가며 본다. 하지만 어째서 이 강아지들은 다 비슷비슷하게 생겨먹은 것인가. 계속해서 똑같은 풍경뿐인 것 같다. 물론 아직 저 위엔 더 많은 샵들이 있다. 조금 더, 저기 뭔가 눈길이 가는 샵이 있다. 물론 거기도 비슷한 생김새의 강아지들이다. 하지만 뭔가, 내 시선이 자꾸 쏠리는 강아지가 있다. 솜털같이 하얀 말티즈. 창 너머에서 나를 바라보는 그 똘망똘망한 눈빛이 자꾸만 그것을 바라보게 만든다. 마치 이것은 갑작스럽게 정말 사고 싶은 물건을 보았을 때의 그 두근거림과 같은 느낌이다. 내 발에서 벗겨졌다고 생각한 빨간 구두가 아직도 신겨져 있는 것일까, 아니, 이제는 내 손에도 무언가 있는 것인가? 나도 모르게 그 애견샵의 문을 열고 말았다. 그 문이 열림과 동시에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며 머리가 어지러워진다. 몸이 기울며 서서히 돌아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눈을 감아본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내 품엔 분양계약서라고 적힌 종이와 그 하얀 솜뭉치 같은 말티즈 한 마리가 안겨져 있었다. 누리. 갑자기 머릿속에서 이 단어가 울려 퍼진다. 무엇인가 이 강아지의 이름을 ‘누리’라고 지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 ‘누리’는 아직 무서운 듯 낑낑대고 있었다. 나는 누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부드러운 털의 촉감이 정말이지 - 머리가 다시 어지러워진다. 아……. 누리는 불안한 듯 조금 더 크게 낑낑거리기 시작했다. 어지러움이 서서히 잠겨가자 나는 누리를 안심시키듯 다시 한 번 쓰다듬어 준다.
집에 도착하자 나는 보일러를 틀고 누리를 이불에 내려놓았다. 집에 들어오자 갑자기 다시 걱정이 앞서기 시작한다. 이런 원룸에서 강아지를 키우려 한다니, 나도 제정신이 아닌 셈이다. 나는 누리를 보고 한숨을 내쉰다. 정말 내가 무슨 정신으로 이 아이를 데려온 것인가. 다시금 내면 아래서 나를 지켜보고 있던 그 생각이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기 시작한다. 고개를 휘휘 가로젓는다. 내 머릿속에 끈적끈적하게 들러붙은 무언가를 때려는 것처럼 격렬하게 휘저어 본다. 당연히 머리만 아파올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두통이 마치 물귀신처럼 그 생각을 끄내리는 듯하다. 나는 누리를 말없이 바라본다. 누리는 마치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듯 이불 위를 아장아장 기어가고 있다. 나는 누리 옆에 앉아서 누리를 쓰다듬어준다. 약간은 적응이 된 것일까, 누리는 조용히 내 손길을 받아들이는 듯하다. 나는 다시 일어나 두통이 끌고 간 그 생각이 다시 탈출하여 나를 집어삼키기 전에 주방의 서랍을 테이프로 두르기 시작한다. 한 겹, 두 겹……. 손잡이를 테이프로 둘러 묶을 때마다 나의 그 생각도 서서히 봉인되는 느낌이다. 테이프가 너무 두꺼워져서 더 이상 두를 수 없을 때 까지 - 이제는 정말로 두를 수가 없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까진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생각보다는 여전히 불안한 느낌이 더 든다.
다시 누리 옆으로 털썩 주저앉는다. 집 안은 너무나 고요해서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누리를 내 무릎 위로 올려놓아 보았다. 따뜻한 온기, 불안한 마음을 약간이나마 녹여주는 듯하다. 누리를 몇 번 쓰다듬어 주고는 손을 모으고 눈을 감는다. 가만히 앉아 속으로 기도를 한다. 이 행복이 오래 가게 해 주세요……. 기도를 마치고 눈을 떴을 땐, 누리는 곤히 잠이 든 모습이다. 나는 누리를 조심히 들어 베개 옆에 둔다. 누리가 잠든 모습을 보니 나 역시 피곤한 느낌이 서서히 들어온다. 외출을 하고 왔기 때문일까, 아니, 이 감각은 단지 피곤한 것뿐만이 아니라 내 의식 자체가 몸에서 분리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 눈을 감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이번엔 눈을 감으면 안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눈을 감지 않으려 노력해본다. 하지만 자꾸만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나를 점점 어둠으로 내모는 듯 - 그 어둠에 빠지면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다. 눈이 서서히 감겨든다. 또 한 번, 나의 그 시도는 아무리 막으려 해도 통하지 않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며칠이 지난 후일 것이다. 아니, 이상하게도 며칠이 지나 있을 것이다. 날짜 외엔 모든 게 그대로일 만큼 이상한……. 눈을 감았다 떠 봐도 더 이상의 변화는 없었다. 집에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하지만, 이는 누리를 재우고 난 후의 그런 고요의 침묵과는 거리가 다르다. 아니, 오히려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그런 류의 침묵일 것이다. 갑자기 두려움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누리! 나는 누리를 확인해 보았다. 누리는 다행히도 곤히 자고 있다. 정말로 모든 것이 그대로이다. 아니, 바뀐 것은 내 인식과 날짜밖에는 없었다. 사실상 날짜조차도 바뀐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달력이 모두 하얀 빈 페이지이기 때문에 - 하지만 며칠이 지났다는 사실이 마치 내게 입력되어있는 그런 느낌이랄까……. 마치 꿈과 같은 그런 상황이다. 하지만 이는 꿈은 아닐 것이다. 애초에 이런 선명한 꿈은 꿔 본적이 없다. 갑자기 몸이 며칠이나 지난 것처럼 피곤하고 피폐해져 온다.
누리는 여전히 자고 있다. 이제 모든 것이 그대로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번에도 누리 옆에 털썩 주저앉는다. 하지만 집안은 여전히 평화의 고요가 아닌 불길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눈이 피곤한 듯 서서히 풀려온다. 하지만 의식은 멀쩡하다. 이번엔 무언가 다른 시간으로, 또는 다른 세계로 넘어가는 듯한 그런 느낌은 없다. 아니, 차라리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 검은 그림자 같은 생각이 다시 내 내면을 타고 뱀처럼 서서히 기어오른다. 머리를 흔들어본다. 하지만 아무리 격렬하게 흔들어도 두통은커녕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맹수 앞에 묶여있는 것처럼……. 이 세계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 세계는 내가 알던 세계가 아닌 것이다. 차라리 이게 악몽이었으면 - 설사 이게 악몽이어도 빠져나가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어쩌면 이렇게 될 시나리오 상에 있던 것일까? 불길한 느낌이 내 다리를, 그리고 내 허리, 가슴, 목……. 이렇게 점점 조여 온다. 몸이 완전히 묶여버린 느낌이다. 더 이상 정말로 움직이기도 힘들다. 이젠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아마 내 내면 깊숙한 곳에 가둬났다고 생각한 그 생각은 오히려 내 내면을 서서히 파먹으면서 이곳까지 올라온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