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하나 세웠다. 험준한 산 속에 세워진 얼음의 성. 천천히 짓기 시작했던 그 성은 어느새 튼튼하게 완공되었고, 점점 숨겨지기 시작했다. 오랜 공사의 시간은 외로웠다. 간혹 찾아오는 사람이 있긴 했었지만 -- 글쎄, 너무나도 오래 전 일이라 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성이 완공되고 나서, 나는 고풍스러운 정원을 꾸며놓았다. 차분하고, 우아하고, 품위있게. 간혹 내 스타일이 아닌 부분도 있기야 했지만, 그런건 상관은 없었다. 나는 이 성의 왕으로써 품위를 지녀야 했기에, 내가 이 정원에 맞추어 가면 되는 것이었다. 정원은 점점 커졌다. 깊은 산속이라는 천연의 방벽을 겨우 건너와 정원에 도달한대도 성은 아득히 먼 거리에 있었다. 나는 그렇게 성을 정원 속에 숨겨갔다.
사실 외롭긴 했다. 원래도 잘 찾아오지 않는 이 산속. 너르고 너른 정원 속에 숨겨진 이 성에 손님이야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어찌됬든 상관은 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었기에. 나는 서서히 외로움에 적응해가고 있었다 -- 그리고 점점 적응해 갈 것이다. 게다가 간혹 정원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그럭저럭 있었다. 비록 그들은 성의 존재에 대해 눈치채지 못했지만, 내 입장에선 그것이 더 좋았다. 나는 그들을 창문을 통해 멀찍히 바라보는 것을 선호했다.그러다 마침내 내 성을 찾은 한 사람이 있었다.
당시에 나는 입에 피를 머금고 있었다. 그 당시엔 막 가슴에 구멍이 생긴 참이었다. 작은 송곳 구멍같은 그리 크지 않은 구멍이었지만, 그 안에서 피가 줄줄 새어 나왔기에 그 누구에게도 모습을 보일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 나는 그에게 드러나버리고 말았다. 이건 예상 밖이다. 나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그 역시 이런 곳에서 나를 마주치리라고는 생각을 못 한 듯 했다. 그는 내게 흐르는 피를 보고는 닦아주겠다고 했다. 모르겠다. 어째서 그걸 허락했는지. 잠깐의 경계 후에 나는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어찌되었든 핏자국은 닦여져가고 있으니 상관은 없었다. 조금은 이 성을 덜 숨겨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곤 했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헛된 생각이었다. 그에게 성의 출입을 허가한 채 언제나처럼 창가에서 밖을 바라보던 내 등 뒤로 무언가가 느껴졌다. 곧 그것이 심각한 통증으로 변하고 나서야, 나는 내 가슴의 구멍을 뜷고 나온 비수를 눈치챘다. 곧바로 나는 성 밖으로 그를 쫓아냈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비수가 낸 가는 상처에서 구멍이 더욱 넓어지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부터 피가 새어나왔다. 전보다 더욱 많은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어지러워질 정도로. 하지만 난 그것으로 죽을수가 없었다. 끔찍한 통증이었지만 멈출 방법이 존재하지가 않았다. 너무나도 무력한 이 처지에 나는 그저 어두운 나의 옥좌에 앉아있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도 여전히 정원을 찾아오는 사람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성을 드러내 줄 생각은 없었다. 나는 호수를 하나 만들기 시작했다. 굉장히 맑고 깨끗한 호수 하나. 이 호수는 정원 한가운데에 마치 거울과도 같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 거울같은 호수에는 얼음의 성이 비쳐 보였다. 아니,성은 이제 호수의 너머에 있었다. 나는 그 허상의 성에서 지내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역시 평소처럼 밖을 바라보았다. 한 때는 정원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기도 했고, 또 한 때는 정원에 많은 사람들이 오기도 했다. 그들 중에는 필연적으로 이 호수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다. 어떤 자들은 성을 바라보기도 하고, 어떤 자들은 성을 향해 물에 뛰어들기도 하고, 또 어떤 자들은 물 속의 성 안으로 돌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이 성은 그저 경화수월일 뿐이었다.
까마득한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지금이 되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이 정원을 둘러본다. 그리고 몇몇 눈치가 좋은 사람은 이 거울의 호수까지 이끌려 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성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당신 역시 마찬가지. 당신이 보는 것은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서서 비치는 얼음 성이다. 그 성의 내부는 당신의 상식을 조금 벗어날지도 모른다. 가령 그 내부는 불에 타고 있다던가. 또는 그 성 안의 세계는 안팎이 바껴버린 세계일 수도 있다. 어찌됬든 당신에게 그런것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되진 않는다. 내 가슴의 구멍에 대해선 묻지 말기를. 원래 점점 넓어지는 구멍이다. 내가 소멸하기 전까지. 더이상 당신에게 해 줄 이야기는 없으니 이제는 이 경화수월에 대해선 잊어주길 바란다.